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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과 내용

 <복수는 나의 것>은 2002년경 겉으로는 IMF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그 여파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혼란스러운 시점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영화는 불법 장기 밀매범들에게 자신의 장기와 누나의 수술비를 빼앗긴 남자의 분노를 기점으로 여러 방향에서의 무분별한 복수가 잇달아 일어나는 양상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중첩된 복수의 동인은 개인의 우연적 행위의 연속이 아닌 전지구적 자본화로 인한 운명적 선택일 수 있다는 점에서 짙은 사회성을 띄는 영화로 평가받기도 한다.

 

 이야기는 청각장애인 류가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자신의 누나를 위해 신장을 기증하고자 한다는 내용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류가 바람과는 달리 누나와 혈액형이 달라 기증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의사로부터 듣게 된다. 이후 누나에게 맞는 신장 기증자를 무작정 기다리던 류는 답답한 마음에 장기 밀매단으로부터 누나에게 맞는 신장을 얻으려고 했지만, 신장과 수술비를 몽땅 빼앗긴 채로 버려진다. 낙담한 류는 애인인 영미의 제안에 따라 자신을 해고한 중소기업 사장의 동료인 동진의 어린 딸을 유괴한다. 류가 동진에게 돈을 받으러 나간 사이 누나는 류의 납치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아 자살한다. 설상가상으로 누나를 고향 강가에 매장하는 과정에서 동진의 딸은 실족으로 인해 사망한다. 가족을 잃은 동진과 류는 각각 납치범과 장기 밀매단에게 복수를 다짐하게 되고, 꼬리를 문 복수극이 시작된다. 동진은 류의 여자친구인 영미를 전기 고문을 통해 살해하고, 류는 장기 밀매단을 살해하고 그들의 신장을 씹어먹는 등의 행위를 통해 각자의 복수를 이행한다. 이후 영미가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류는 동진에 대한 복수를, 동진은 유괴범 장본인인 류에 대한 복수를 위해 서로의 집 앞에서 기다린다. 늦은 밤이 되어서 집에 돌아온 류는 동진의 함정에 걸려들어 전기 충격을 당하고 즉사할 위기에 처하지만, 동진은 류를 바로 죽이지 않고 자신의 딸이 죽었던 방법대로 강가에서 죽게 하고 시신을 토막 내어 담는다. 이후 동진은 아나키스트 조직으로 등장한 인물들에 의해 판결문과 칼이 가슴팍에 꽂힌 채 죽음을 맞이한다.

 

감상과 분석

, 그는 왜 가난하고 어리석은가?

주인공 류는 극자본주의 사회에서 하위계급에 속하는 인물이다. 동진 역시 본래 하위계급으로 태어났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노동자에서 자본가로 신분 상승을 이룬 인물이다. 이 둘은 모두 하층 출신이지만, 결과적으로 서로 물질적으로 양극단의 삶을 살아간다. 이 대목을 처음에 마주했을 땐 자본주의가 운운하는 노력한 만큼 성취하는 공정한 사회의 전형적인 두 인물상인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동진과 류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하층 계급을 어떤 식으로 함의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되었다. 류는 단순히 물질적 가난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체적 결함, 가족의 투병 생활로 인한 생활고를 극심하게 겪는 인물이다. 그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불운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열악한 삶을 살아간다.

 

청각 장애를 가진 채로 가난하게 태어나 부모님을 여읜 채 아픈 누나를 간호하며 살아가는 류의 상황적 설정은 우연적이고 특수한 상황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해진 운명에 가깝다. 가난하게 태어난 것을 시발점으로 앞으로 많은 불행한 일이 도미노처럼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은 현실적으로 합리적인 예측에 가깝다. 합리적인 예측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라는 점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속된 표현으로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한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돈이 없는 류가 자신의 누나를 위해 장기매매와 유괴를 했던 것도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다소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인 행위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류 역시 자신의 행위가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돈이 없기 때문에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 필연을 매 순간 마주하게 된다.

 

류는 자본의 논리가 무분별하게 잠식되어 인간의 목숨에 대해서도 값이 매겨지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간다. 자본이 있다면 목숨을 수십 개도 더 살 수 있지만, 가진 것이 없다면 하나뿐인 목숨마저 내놓아야 하는 사회적 구조는 류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모순적이게도 자신의 장기를 내다 파는 것에 대한 아무런 책임을 져주지 않는다. 또한 류가 동진의 딸을 유괴한 행위는 동진이 딸에게 가진 사랑이라는 감정을 화폐라는 물질적 가치로 맞교환하고자 한 것으로, 이 역시 자본주의적 폐해를 또 한 번 드러낸다. 혹자는 류의 장기매매, 유괴가 사회적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닌 엄연한 개인의 의지적 선택의 문제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생각이 나의 머릿속 일부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건 사실이지만, ‘왜 가난한 이들이 어리석은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가?’, ‘왜 약한 이들은 사회적으로 규정된 시스템을 불신하는가?’를 중심으로 계급과 사회의 관계를 따져보면 어쩌면 류는 애초에 악마의 날개를 달고 태어난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 역시 쉽사리 지울 수 없는 것 같다.

 

누구의, 누구를 위한 복수인가?

영화에서 겉으로 보여지는 복수극의 시작은 류가 장기 밀매단에게 사기를 당한 이후부터다. 딸을 잃은 동진의 영미에게의 복수, 누나를 잃은 류의 장기 밀매단에게의 복수, 영미를 잃은 류의 동진에게의 복수, 동진의 딸을 죽인 류에게의 복수가 잇달아서 피해자-가해자의 구도가 뒤집혀 가며 제시된다. 또한 마지막에는 동진이 아나키스트들에게 당하는 복수가 제시되면서 복수와 원한의 구도가 선형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아나키스트 -> 동진 -> -> 동진 -> -> 장기 밀매단라는 다소 순환적이고 얽힌 복수의 구도가 그려진다. 아나키스트가 영미가 과거 작성하던 무산계급에 의한 자본가의 처단의 내용을 담은 판결문을 동진의 가슴에 꽂은 것은 동진이 개인적인 원한 이외에 과거 사회 계급적 갈등을 겪은 인물이었음을 드러내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이는 과거 노동자를 착취하여 부를 쌓은 동진과 돈이 없어 범죄를 저지른 노동자 계급인 류가 서로 밀접한 연관 속에 있으며, 이러한 관계를 차용했을 때 류의 범죄 책임에 동진이 기여했을 가능성을 짐작해볼 수 있다.

 

한편 복수를 자행하는 자의 가장 기본적인 심리는 자신의 죄의식에 대한 면죄부와 분노의 표출이다. 류가 자신의 누나, 유괴한 보배를 떠나보내고 난 후 장기 밀매단을 집착적으로 좇은 심리적 기저에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죽은 것이 아니라는 책임 도피의 심리가 강하게 깔려있다. 류는 그 스스로가 장기 밀매단을 찾아가지 않았더라면 누나를 충분히 살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이루어지지 못한 현실에 대한 죄책감이 자신에게 사기를 친 업자들에게 잔인한 복수를 이행했을 때만 덜어질 수 있음을 직감한다. 류 그 자신이 복수를 한다는 것은 상대가 처벌받을 만한 일을 했음을 방증하는 것이고 그 사실을 통해 자신은 잘못이 없다는 합리화를 할 수 있게 되니까 결국엔 그 누구도 아닌 를 위한 복수를 하게 된다. 동진의 경우도 영미와 류가 일부러 보배를 죽인 것이 아님을 알지만, 자신이 딸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기인한 공연한 분노의 방향을 영미와 류에게로 돌린다. 이 역시 이미 세상을 떠난 딸을 위하는 것이 아닌 자신을 위한 복수로 변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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