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과 내용
<301, 302>는 IMF 이전의 1980년대 경제 호황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의식주에 대한 원초적인 결핍을 겪었던 이전 시대에서 벗어나 비교적 안정적이고 여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 세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자신의 능력과 노력을 발휘하여 소위 ‘성공한 삶’을 쟁취하는 것이 이상적인 삶이라는 강박이 만연한 시대를 재조명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로 새희망 바이오 아파트 주민인 301호, 302호 두 여자가 등장한다. 301, 302 두 여자는 식욕, 성욕에 관해 서로 반대 방향으로 결핍의 양상을 보인다.
301호는 요리와 음식, 그리고 성관계에 대한 욕망이 넘치는 인물로 대변된다. 이에 반해 302호는 최소한의 생명 연장을 위한 음식 외에는 식욕과 성욕이 모두 굳어버린 인물로 대변된다. 301호는 과거 자신의 남편으로부터 자신의 소비행위를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고 거부당한 트라우마를 가졌고, 302호는 그녀의 소비에 대한 선택권을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박탈당한 것에 대한 트라우마를 지녔다. 301호는 자신의 소비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302호에게 자신의 요리를 권한다. 이에 302호는 음식을 모두 토해버리고 거부하지만 301호는 그럼에도 꾸준히 음식을 강요한다. 후반부에는 301호가 302호 그 자체를 요리의 재료로 사용하고, 302호도 이를 허용하여 몸을 내어주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감상과 분석
송희(301호)와 윤희(302호)는 화려하고 풍요로운 현대사회 속에서 세상과 단절된 외로운 인물이다. 송희는 요리를 하여 타인에게 제공하는 것을 자신의 소명이자 애정의 표현으로 여기지만 이를 남편으로부터 거부당한다. 송희는 남편이 그녀의 요리를 거부하는 것이 단순히 음식을 사양하는 행위가 아닌 그녀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여긴다. 이에 오기를 느낀 송희는 남편에게 더 맛있는 음식을 해주려고 하지만 점점 더 완강하게 거부를 당하고 결국에는 자신과 남편이 키우던 애완견을 요리의 재료로 사용하는 광적 집착을 보인다. 이에 충격을 느낀 남편은 송희와의 이혼을 결심하고 송희는 완전히 홀로 남는다. 이것이 송희와 세상의 단절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식욕을 비롯하여 송희의 삶의 전부였던 남편의 부재는 그녀 내면 세계의 상실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송희는 옆집 주민인 302호에게 그간 부정당한 소비의 욕구를 요리를 제공함으로써 풀고자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거부를 당하고 세상과의 완전한 단절의 삶을 마주하게 된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우나 정서적으로 궁핍했던 윤희의 가부장적 집안은 화려하고도 외로운 현대사회를 집약적으로 담아 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02호 윤희의 유년 시절은 의붓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기억과 자신을 따라서 냉장고에 숨다가 숨진 동네 아이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로 점철되어 있다. 어린아이에서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습득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소비의 경험이 아닌 강압적이고 왜곡된 소비를 하게 된 윤희는 그 자신의 자아를 도난당하고 영원한 고통의 시간 속에 갇히게 되었다. 이는 윤희가 세상과 단절된 상태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윤희는 육체적으로 음식과 성관계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이지만, 마음 한편에는 온전히 해보지 못한 소비에 대한 욕구가 남아있다. 윤희는 이러한 희미한 욕구를 그녀가 세상과 유일하게 소통하는 창구인 글을 통해 담아내고자 하지만 글을 연재함에도 그녀의 근본적인 외로움은 채워지지 않는다. 이는 그녀가 또다시 마주한 세상과의 완전한 단절이다.
이처럼 송희와 윤희는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었다는 공통점을 지닌 인물이다.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정황과 이에 대한 각자의 태도는 다르지만 둘은 어느새 서로의 고통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 하지만 공유를 한다는 것이 꼭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것과 직결되는 일은 아니다. 송희는 윤희가 자신이 제공한 음식을 삼키지 못하는 속사정을 들은 후에도 윤희의 고통을 헤아리기보다 자신의 시각에 맞춰서 상대의 이야기를 받아들인다. 도리어 송희가 앞으로 윤희만을 위한 요리일기를 써야겠다고 말하는 장면은 송희가 윤희의 상처를 포용하지 못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사실 윤희의 경우도 송희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경험과 상처를 온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한다. 윤희는 송희를 처음 마주했을 때 송희가 수많은 남자와 성관계를 가졌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했고, 송희가 자신의 이야기를 했을 때 위로보다는 그저 듣고 있는 편을 택했다. 이처럼 두 여자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각자가 가진 색안경에 맞추어서 바라본다.
송희와 윤희가 서로의 과거를 모두 공유하고 난 후에 둘은 서로 반대되는 소비에 대한 강박을 해소할 합의점을 찾는다. 이 방법이 다소 극단적이고 엽기적이라는 점이 이 영화의 중요한 대목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가 먹고 먹히는 행위 즉, 인육을 소비하는 행위가 두 여자가 가진 결핍을 극복할 최후의 방안이었다는 점이 다소 기이하면서도 안타깝게 느껴졌다. 이 둘은 그들과 가까운 타인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이미 깊게 내면화되어서 자신이 상처를 받은 상황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다. 타인이 자신에게 준 상처나 판단들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고, 궁극적으로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부재하다. 그들의 마음은 상처를 받은 충격의 순간에 늘 머물러있고, 특정 사람과 상황에 대한 회피만을 유일한 도피처로 삼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희와 송희는 서로가 합의한 ‘먹고 먹히는 행위’를 통해서 각자의 결핍을 완전하게 해소했다고 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실 완전한 해소에 초점을 맞추면 그들의 행위는 다소 난해하고 트라우마를 대하는 수동적인 방식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나 스스로가 윤희나 송희가 되어보지 않고서 온전히 논할 수 있는 문제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통이라는 감정은 주관적이기에 천차만별로 그 깊이가 다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이혼의 경험이 긴 인생 여정 중 점에 불과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세상이 무너지는 일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똑같은 물건, 똑같은 사람, 똑같은 상황을 접해도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으며, 그렇게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윤희와 송희의 과거 역시 누군가에게는 조금은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충분히 털고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일로 여겨질 수도 있고, 혹자에게는 평생 지우지 못할 상처로 남을 수도 있다. 누군가가 상처를 받은 것을 보고 위로를 하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그 사람이 완전한 극복을 하지 못했을 때 이에 대한 비판 아닌 비판으로 그들을 또 다른 강박적 고통에 내몰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윤희와 송희의 고통을 완벽하게 헤아리지 못한다. 이야기의 맥락과 경험적 추론을 통해서 주인공의 삶이 어땠을지 짐작만 할 뿐이다. 영화의 말미에 인육을 먹는 장면이 삽입되었고, 나 역시 처음에는 이 장면을 보고서 다소 잔인하다는 생각과 방법이 과하지는 않은가에 대한 생각이 스쳤다. 그러곤 이내 또 한 번 이런 생각이 뒤따랐다. “얼마나 힘들었기에 저렇게까지 해야 했었나.” 내가 무슨 자격으로 타인의 고통에 한도를 정하고 그에 걸맞은 행위까지만 해주길 바랄 수 있는 것일까 싶었다. 영화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 인육을 먹는 행위 그 자체에 경악을 감출 수 없다는 평들이 상당히 많았다. 나는 그들의 평가를 비롯한 내가 처음에 가졌던 부정적 시선이 영화 속 윤희와 송희가 서로의 과거를 처음 나눌 때 취했던 태도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엔 각자의 색안경을 낀 채로 여전히 상대를 판단하고 그 속에 녹아든 위선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인육을 먹는 것보다 조금 더 섬뜩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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